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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빈.키티
따뜻한 초콜릿 한 잔이 없었다면 생각이 어디까지 뻗어나갔을 지 가늠되지 않는다. 바이올린을 놓고 영동2교를 건널 때의 나는 단칸방에서 노파를 죽일 궁리를 하고 있는 라스꼴리니꼬프였고, 실패한 제사를 드린 가인이었다. 그 둘보다 나은 점을 하나라도 찾아본다면 나의 칼은 다른 사람을 향하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그 칼이 어딘가를 향한다면 나 자신이다. 몇 년 전까지 '고슴도치의 우아함'의 팔로마를 특별함 없이는 살 수 없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팔로마에게 공감하는 나 또한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라스꼴리니꼬프의 이론과도 일치한다. 나는 비범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길을 막는 다른 사람들을 죽일 생각은 없는 착한 비범한 사람이다. 엘리트다. 하지만 죄와 벌의 결말처럼 나는 비범한 사람..
살면서 몇몇 악기를 배워보았지만, 바이올린만큼 들을 때와 직접 연습해볼 때 간극의 차이가 큰 악기는 처음이다. 피아노는 쉬운 곡들의 경우 박자만 제대로 맞추고 이상한 곳에 강세만 주지 않는다면 들을 만하게 연습해볼 수 있다. 기타도 처음에는 조금 유치할 뿐이지 이상하다고 하긴 그러하다. 하모니카도 역시나. 하지만 바이올린은 이상함을 넘어서 자괴감이 느껴질 정도다. 누군가는 쇳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정말 좋은 표현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음정의 문제가 있다.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는 모두 음정이 정해져있고 음을 틀리지 않는 한 음정이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바이올린은? 기타처럼 프렛이 없기 때문에 선생님이 붙여주신 스티커에서 약간이라도 벗어난다면 소름끼치게 살짝 빗나간 음이 들린다. 음..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크리스마스 기분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은?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는 스타벅스이다. 할로윈도 가기 전인 오늘 스타벅스에 앉아있으니 온종일 캐롤만 나오고 있다. 꼭 크리스마스가 아니라도 음악 그 자체로 캐롤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즐겁기는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이른 감이 있다. 벌써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니. 여름의 온기가 채 다 가시지도 않았는데. 작년 이맘때에 읽던 책을 다시 읽어볼까 한다. 홋카이도 놀러가면서 관련 예술 작품을 두 개 감상했었는데 하나가 러브레터, 다른 하나가 빙점이다. 우선 러브레터부터 말해보자면 영화 자체도 너무 좋았고 (정작 오타루의 그 느낌은 많지 않았지만) 특히 OST에 한동안 꽂혀서 피아노로도 연습했었다. 그에 비해 빙점은 기차에서 책을 완독해서..

하룻밤 새에 날씨가 급격히 추워졌다. 심지어 지금은 한낮인데도 13도임을 보면... 10월도 다 가버렸고 이제 곧 겨울임이 실감난다. 점점 울긋불긋 해지는 가로수들도 조급함을 한껏 더해주고 있다. 분명 이번주 초만 해도 "이쯤이면 단풍이 들법도 한데 아직인가?"라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변화가 큰 한주다. 내 생각 때문에 추워졌다고 생각하면 그건 너무 나간 거겠지 양재동에 처음 이사왔을 때가 1월이라는 한겨울이었고, 여름을 넘어서 다시 그 시점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처음 이사왔을 때는 그렇게 삭막했을 수가 없었다. 추위도 추위인데 골목에는 사람도 안보이고 ... 변변한 마트도 없어서 과자 하나 사려면 잔뜩 껴입고 ... 동네에 있는 시간이 주말을 제외하고는 밤 밖에 없어서 더욱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바이올린을 연습하러 학원에 갔다가 피아노만 주구장창 치고 오는 날이 있다. 보통 그런 날들은 특정 곡에 꽂히는 날이다. 따라서 오늘은 손가락만 살짝 풀고 바이올린을 연습했어야 하는 날이다. 하지만 우연은 정말 우연처럼 일어나는 법이다. 분명 어제 밤까지만 해도 나의 별다방 생일쿠폰이 오늘까지임을 인지하고 있었고, 아침에 마실 예정이었다. 하, 하지만 월요일은 너무 잔인한 요일이다. 심난한 나의 마음 속에 별다방은 새하얗게 사라졌다. 십년전이었다면 공부보다 먼저인 별다방 라떼였을 텐데! 직장인의 스트레스를 다시한번 실감해본다. 기프티콘이 우연히 연습 중에 떠올랐을때 어떻게 해야 할까? 1분 정도 고민하다가 당장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주는게 어떨까 싶어서 단톡방에 올려보았다. 하지만 응답이 없다. 그리..
밤이 많이 추워졌다. 찬 공기가 상쾌한 느낌을 넘어서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준다. 봄에는 느낄 수 없는 가을만의 추위다. 이 추위에는 한 해를 보내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에 대한 쓸쓸함과 아쉬움을 담고 있어서일까? 또는 다시 따뜻한 날씨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앗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글쎄, 나는 어느 쪽일까. 전자에 가까워질수록 나이를 먹어간다고 할 수 있을까? 뼛속까지 감성적이 되는 가을날 밤은 영화를 보기에 좋다. 분명 작년 봄에 본 "겨울의 심장"을 가을 밤에 보니 느낌이 또 다르다. 여전히 스테판이 원망스럽고 까미유가 너무 아까움은 변하지 않지만 받아드리는 방법이 다르다. 저 남자의 차가운 감정선을 보면서 더이상 멋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뼛속까지 소름끼칠 뿐이다. 애초에 왜 멋있다는 생각을 했는..
일반적으로 당직이라고 하면 야간 또는 주말에 근무 장소에 나와서 가만히 앉아있거나 TV보고 있는 근무 형태를 말하지만, 내가 지금 서고 있는 당직은 장소는 중요하지 않고 전화와 메시지를 잘 보아야 하는 당직이다. 또한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노트북도 항시 필수 지참.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직을 서서 근무시간을 인정받고 평일에 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안좋다는 생각도 든다. 특이나 주말 중 하루를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날릴때는 더더욱. 어차피 별 것도 못하는데 일이나 하자 해서 발표 준비를 하고, 오늘따라 오는 업무 문의에도 대응 중이다. 평일과 다를 바가 뭘까? 더 안좋아진 것 같은데? 주말이라고 어차피 할 것도 없으면서 불평이 많아? ....
오늘 한 여성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말이다. 퇴근하는데 공기가 차다. 마음 한 켠이 무겁길래, 나랑 그 사람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물어본다. 아무 상관없다. 같은 나라에서 자랐고, 살아왔고, 서로 볼 기회가 있었을 뿐이다. 심지어 나만 그녀를 TV를 통해 봤을 뿐인데. 그런 결론에도 무거운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화도 내본다. 그녀는 나보다 가진게 분명 많았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했겠지. 그녀의 매력 중 하나라도 나에게 왔다면 내 인생도 반짝반짝 빛이 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그 사람은 분명 나쁘다. 나는 화가 나야한다. 이번에는 살짝 화가 났지만, 그럼에도 우울함은 누그러지지 않는다. 보잘 것 없는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걸까.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