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빈.키티
아픔에 대한 기록 본문
아침에는 구름이 잔뜩 끼고 빗방울을 이따금씩 흩날리더니 오후가 되자 파란 하늘로 변했다. 날씨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는 나에게 이보다 좋은 축복이 있을까. 창 밖만 바라봐도 우울했던 기분이 한결 가신다. 역설적으로 우울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글로 적기에 가장 적당한 기분이기도 하다. 사노라면 가사 처럼 해뜰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한껏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3월 말부터 아팠다. 여러 검사에서 이상소견은 없었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팠다. 정확히 6주 전 화요일로 기억한다. 양재역 프릳츠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갑작스러운 어지럼증과 피가 안통하는 증상(나의 경우 손발이 굉장히 차가워지고 입술이 화한 느낌이 들었다)이 나타났다. 당시에는 빈혈을 의심하여 내과에 갔으나 하필 영업 종료시간에 맞춰가서 제대로된 진료를 받을 수 없었다. 다음 날 다른 내과에 가서 혈액검사 결과는 정상, 빈혈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지러움과 무기력증, 혈액 순환의 문제가 계속 되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죽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정확한 병명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왜 그런 증상이 나타났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다만 하루에 커피를 세네잔 마실 정도로 카페인을 과다하게 섭취하였고, 코로나 사태로 이어진 재택으로 운동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점. 그리고 식생활이 굉장히 부실했다는 점을 토대로 볼 때 몸이 많이 망가진 상태였다고 의심해본다. 또는 스트레스에 의한 공황발작일 수도 있다.
그렇게 주말이 찾아왔고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그 다음주에 부정맥 관련 시술을 받으시는데, 왠지 모르게 나의 심장도 제대로 안뛰고 있다는 느낌이 어느 순간 들었다. 그리고 나의 심박은 정상치보다 빨라졌다. 일반적으로 1분에 60~80회, 러프하게는 60~100회 뛸 때 정상치로 보는데 나는 심심하면 110회까지 뛰기 일수였다. 더욱 더 무서운 점은 움직이고 있을 때가 아니라 평소 쉬고 있을 때, 자고 일어났을 때에도 빈맥(심장이 빨리 뜀)이 왔고 심리적 불안감에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 다음 주 내과에서 받은 심전도, 흉부 X레이, 혈액 검사 결과 동성 빈맥 진단을 받았다. 동성 빈맥은 부정맥이 아니라 운동할 때처럼 당연히 심장이 빨리 뛰는 상황에서 뛰는 것 같은 규칙적인 빈맥을 의미한다. 심리적 이유나 생활 습관을 원인으로 의심하였는데, 일단 심장이 괜찮다니 마음이 살짝 편해지긴 했지만 증상이 바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미 이 때 나의 심리 상태는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고 생각한다. 나의 증세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심부전부터 시작해서 무시무시한 병명들이 잔뜩 나온다. 물론 이러한 정보들이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분명히 역효과다. 일주일 내내 빈맥 증상에 지쳐서 일에도, 일상 생활에도 집중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심장 내과를 향한다. 그리고 심장병 진단의 중요한 검사인 심장초음파와 24시간 심전도(홀터) 검사를 받는다.
검사 내내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자신의 심장에 대해서 강심장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심전도 검사기의 빠른 삑삑 소리는 그저 공포였다. 심장 초음파할 때는 얼마나 떨었는지 심박수가 계속 분당 120회 정도로 유지되었고 의사선생님이 긴장좀 풀라고 했다. 심장 초음파 검사가 정상으로 나왔기 때문에 24시간 심전도 기계를 차고 나올 때 마음은 살짝 가벼운 상태였다. 하지만 밤이 되고 새벽에 한번 깼을 때 다시금 절망에 빠졌다. 나의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확신감, 이 검사기로 그 사실을 확인해야한다는 절망감. 내가 이렇게 무너져본적이 있을까?
24시간 심전도 검사까지 끝내고 나온 결과는 정상이었다. 의심했었던 조기 수축 증상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나에게 나온 처방은 인데놀과 자낙스정. 인데놀은 심박수를 낮추고, 자낙스정은 신경안정제로 공황장애 치료에 쓰이기도 한다. 의사선생님은 심리적인 문제로 진단하였다. 그렇게 아무런 병명도 얻지 못하고 나올 때 내 가슴은 그렇게 상쾌했다. 그제서야 나의 마음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었다. 적어도 심장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2주가 지난 지금은 많이 편안해졌다. 적어도 빈맥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하지만 불안한 심리상태는 여전하다. 그러한 심리 상태가 나의 온몸 구석구석을 찌름을 느낀다. 심장을 콕콕 찌를 뿐 아니라 다리, 팔 등등 온몸의 근육들이 불안하다. 그리고 잠자리에 대한 문제는 어째 더욱 심각해져가고 있다. 3~4시간을 자면 항상 깨는데 이게 불안증세 때문인지 아니면 수면무호흡의 문제인지 가늠할 수 없다. 자고 났을때 더 피곤해지는 나의 몸상태를 보면 수면무호흡으로 강하게 의심된다. 또한 오래전부터 코골이가 있었기에 이 참에 수면다원검사를 예약했다. 잠을 잘 자면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앞으로도 나의 병명 추적은 계속될 것 같다. 현재 역류성 식도염, 위염과 비염, 축농증 증세도 의심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병명을 의심한다는 점에서 불안 장애의 한 종류인 건강염려증세도 의심된다. 이 기회에 나쁜 생활습관과 불규칙한 영양소 섭취로 망가진 몸을 재건한다..! 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지만, 이 불안증. 불안증이 참 막막하다.
불안 자체는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이지만 마치 통주저음처럼 나의 심리 아래에 불안이 유유히 흐르고 있을때, 병적인 불안이 이런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민한 상태가 지속되는데, 이 상태는 나도 힘들고 내 주변 사람들도 힘들 것 같다. 특히 밤이 가까워질 수록, 그리고 새벽에 깼을 때, 그리고 자고 일어났을 때 불안의 정도가 심해지는데... 가장 편한 시간이어야 할 수면 시간이 고통이 되는건 괴로운 일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살펴보자면.. 내가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아픈 사람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그동안 아픈 사람에 대한 배려없는 나의 행동들을 이 지면을 빌어 반성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다들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몸과 마음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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