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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비지 않는 서울역 앞 본문

일기

붐비지 않는 서울역 앞

햇.빛 2020. 3. 7. 18:47

 

 

  사실 서울역 앞은 남산 산책의 종착지일 뿐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부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분명 나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인데 모순적으로 보인다.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아이디어는 산책 자체는 나에게 큰 의미가 없으며 서울스퀘어 건물 1층의 퀴즈노즈의 샌드위치, 투썸 플레이스의 아메리카노를 낭만적으로 즐기기 위해 살짝 지친 몸을 만들어주는 준비운동이라는 설명이다. 

 

  오후 3시쯤 동대 입구역에서 내려서 신라 호텔 옆길을 따라 올라간다. 남산 터널에 도착하기 전 서울 극장 옆 샛길을 따라서 서울타워까지 올라간다. 잠시 숨을 돌리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 서울역 광장까지 도착한다. 그리고 샌드위치를 하나 먹고 커피를 마시며 감상에 빠진다. 그 감상은 보통 생산적이지 않다. 보통 '내가 지금 뭐하는 걸까'라는 자문에서 시작해서 '에라 모르겠다'로 끝난다. 서글퍼야 하지만 의외로 기분은 유쾌하다. 모든 상념을 이 곳에 내려놓고 집에 가기 때문이다. 그래, 그러기 위해서 피곤한 몸이 필요하다.

 

  이런 산책도 일년에 두, 세번씩은 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SK텔레콤의 인적성 검사를 마치고 자괴감에 빠져있을때. 같은 코스를 따라서 커피로 마무리하고 있을 때즈음 자괴감은 온데 간데 사라져 있었다. 다른 때에도 항상 우울을 마음에 담고 출발했던 것 같다. 보통 그 우울의 가장 큰 원인은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때문이었다. 나는 더 성장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나의 문제는 뭘까? 그리고 커피와 함께 항상 우울은 해소되었다.

 

  단순히 몸을 힘들게 해서 스트레스를 잊는 것 아니냐고 반박할지 모른다. 일리 있는 의견이지만 그것 보다는 복잡하다는 반박을 하고 싶다. 위에서는 감상을 쉽게 묘사해버렸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이다. 자괴감과 우울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더 아프게 하는 생각도 필요하고 위로로 되는 생각도 필요하다. 이 두 가지 실을 잘 꼬다보면 잔뜩 엉켜버리고 도저히 풀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제서야 나는 마음 편히 버리고 갈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서울역 앞은 평소보다 사람이 더 없다. 방해받지 않고 감상에 빠질 수 없어서 행복하다. 실을 꼬아서 내다 버리는 것이 아닌 잘 다듬을 수 있을 것 같은 낙관적인 느낌이 든다.

 

 

  아까 남산에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 속에서도 저 멀리 한강물의 일부가 태양빛을 받아 분홍빛으로 비춘다. 오늘의 우울에 대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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