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빈.키티
봄 나들이와 음악들 본문
# 베토벤 교향곡 9번
4월 말부터 좋은 날씨와 함께 찾아온 연휴는 코로나로 갑갑해져 있던 마음을 한결 풀어주었다. 물론 조심해야 하는 시국이었지만 어디라도 가지 않으면 마음의 병이 생길 것 같았기에 짧게나마 친구와 경주를 다녀왔다. 이미 4년 전에 한번 다녀오긴 했지만 보장되는 볼거리와 마음 한켠에 남은 수학여행의 추억... 이 있었기에 큰 고민하지 않고 결정하게 되었다.
차가 없었기에 - 나는 아직 장롱이기도 하고... - 주로 버스를 타고 유적지들을 이동하였다. 그 중에서도 11번 버스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는데, 첫날과 둘째날의 11번 버스의 기사님이 똑같다고 확신한다. KBS 클래식 FM이 틀어져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KBS 클래식 FM에 대한 소견을 말하자면 같은 음악이 몰아서 나오는 경향이 있다. 사실 클래식 음악은, 특히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은 주로 익숙한 곡들이 나오기에 프로그램마다 중복된 음악이 종종 흘러 나온다. 그런데 KBS 클래식 FM은 그 수준을 넘어서 일종의 유행처럼 한 음악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100% 나의 경험에 의한 추측일 뿐이다.) 그리고 최근의 유행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9번이다.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지만 지난주에는 무려 리스트가 피아노로 편곡한 버전을 틀어주시는 바람에 재택근무에 집중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사장님께는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 안그래도 그 연주 때문에 교향곡 9번에 대한 묘한 흥분감이 있었는데, 경주 버스에서 그 음악을 들었을 때의 기분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냥 참 행복했다.
아쉽게도 그 다음날 같은 버스를 탔을 때도 같은 곡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애초에 비인기 채널을 같이 듣는 동지가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내 주변에도 같이 라디오 듣는 사람이 있다면 사연도 써서 보내줄텐데!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사연 보낸게 10년이 넘었다. 고등학생 때 야자시간에 들었던 내 사연을 읽어주는 목소리와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의 시실리안느.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por una cabeza
서울로 올라온 오늘은 지난주에 장만한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렸다. 익숙하지 않은 로드 자전거이기 때문에 연습삼아 선유도정도 다녀오려고 했는데... 어쩌다가 양재 자취방까지 와버렸다. 정말 달리기는 좋은 자전거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속적인 라이딩이 필요하다.
중간에 어떤 아저씨가 음악을 커다랗게 틀고 나를 지나쳤는데 그 곡이 por una cabeza. 힘든데 어째 그 음악이 힘이 되었는지, 정말 그 음악을 끝까지 듣기 위한 목적으로 아저씨 뒤에 따라 붙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저씨가 조금 무서워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음악이 끝나자마자 나는 휴식 모드. 음악의 각성 효과를 생생하게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탱고가 나를 유혹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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